한국의 날씨는 눈이 오고 난 뒤 맑고 청아한 겨울하늘을 볼 수 있는 반면, 북경은 눈이 오고 난 뒤에도 여전히 뿌옇다. 황색과 자주색, 청색으로 치장한 자금성을 가도, 시야가 탁 트이는 만리장성을 올라도 북경의 느낌은 뭔가 우중충한 회색이었다.
하지만, 북경 798예술구에 들어서자 드디어 숨통이 트이고, 공장지대의 대변신에 다시 한 번 놀라면서, 곳곳에 보석같이 숨어있는 갤러리와 작가 작업실에 드디어 눈이 호강하는 순간이었다.
미국 뉴욕에 소호(예술가들의 거리)가 있다면 중국 북경에는 798예술구가 있다. 1950년대 세워진 공장지대가 예술특구로 재탄생했다.
북경 따샨즈(大山子)에 위치한 798예술구는 베이징 올림픽 개최 무렵 예술특구로 화려하게 변신해 각종 언론 매체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내ㆍ외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곳이다.

#798예술구, 어떻게 만들어졌나?
798예술구는 원래 군수 산업 기지로 ‘798’ 이라는 명칭은 산업 기지 내의 한 공장의 번호에서 유래됐다.
1950년대 소련과 동독의 원조로 만들어진 798예술거리는 최첨단이었던 건축기술과 새로운 디자인으로 화북라디오 부품공장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1980년대 말 쇠락기를 맞았다.
동유럽의 지원으로 전쟁에 필요한 무기를 생산해왔지만, 냉전이 끝난 이후 무기공장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70% 이상의 공장이 생산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2만 명이었던 노동자들도 4,000여명으로 급격히 줄어들면서, 지난 2001년 칠성그룹 측이 이 공장을 인수해 고층 아파트를 지어 분양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칠성그룹의 개발 움직임이 보이기 전에 주머니가 가벼운 예술가들이 하나 둘씩 모여 빈 공장을 수리하고 인테리어를 하며 작품 활동을 펼치면서 적막하던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다.
일본에서 돌아온 예술가 황예가 최초로 798공장건물을 임대받고 2001년 10월 화랑의 개장 기념 전시회 ‘북경 Floating World’를 열면서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798예술구가 형성됐다. 중국 정부에서도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2007년 국유지인 이곳을 예술구로 공식 인증했다.

#798예술구, 세계의 문화 아이콘이 되다
값싼 임대료 덕분에 예술인들이 몰리고 카페, 갤러리 등이 들어오면서 798예술구는 음산했던 폐공장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젊은이들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정부는 2006년 최초 10개 문화창의산업 집중구로 지정하고 꽃 심기, 도로 정비 등의 환경정비 사업을 펼쳐 일부 가동되고 있는 공장들과 예술거리가 공존하는 중국의 현대 미술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현재 60만㎡의 넓은 부지에 전문화랑, 갤러리, 카페 등으로 개조한 독특한 인테리어의 건물 400여 동이 빼곡히 들어차 관광객들이 2009년에만 150만명을 돌파, 명실상부한 예술, 상업, 여행의 중심지로 발돋움했다. 또 798예술구는 타임, 뉴스위크, 포춘지 등에 세계에서 가장 문화적 상징성과 발전가능성이 있는 예술도시로 선정되면서 ‘창의지구(創意地區), 문화명원(文化名園)’의 슬로건을 내세우며 베이징의 문화아이콘으로 상징되고 있다.

#볼거리, 놀거리가 있는 복합문화거리
오전 이른 시간 찾아서인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갤러리도 많았고, 상점들도 커피숍을 제외하고는 정오가 가까워져야 문을 연다고 했다.
하지만, 갤리리 앞과 거리 곳곳에 있는 작품들은 우리나라 유수의 비엔날레에서 보는 작품 못지않게 파격적이고 실험적이었다.
798예술구의 대표적인 화랑은 벨기에 컬렉터가 운영하고 있는 대형 갤러리 UCCA(Ullens Center for Contemporary Art)로 매년 이곳을 찾는 관람객 수만 15만명에 달한다. ‘차이나 아트 시즌스' 도 들러볼 만하다.
지난 2004년 ‘제1회 따샨즈국제예술제’를 시작으로 매년 봄 다른 주제로 축제가 펼쳐지고 규모 또한 확대되고 있다. 끼 있는 각국의 예술인이 798예술거리를 찾아 기묘한 행위예술을 선보이고, 관객들이 직접 창작 체험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어 단순히 눈으로만 즐기는 감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특히 대부분의 화랑, 갤러리가 무료로 입장할 수 있어 중국 미술의 현주소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 색색의 장독을 이용한 탑 모양 구조물. 울산매일 iusm@iusm.co.kr

#한국화가 전시회도 다수
다니다보니 한국 작가의 작품을 걸고 있는 갤러리가 있어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봤다. 어머니인 김인옥과 딸 김재원의 합동전시회였다. 김재원의 아버지가 유명한 서양화가인 김강용이고, 그의 외삼촌이 김남오 화백이다.
현재 798예술구에서는 한국 갤러리 ‘크리에이터즈 컴퍼니'(C컴퍼니), ‘표 화랑' 등을 비롯해 해외 자본 화랑이 약 40곳 정도 있다. 북한도 이곳에서 만수대 창작사 미술관을 직영하고 있는데, 수묵화 위주로 개인전을 주로 많이 한다고 한다.

#중국의 미술정책은…
중국은 다수의 국가기관이 정책적으로 미술을 진흥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 해외 유명작가의 작품을 고가에 사들이면서 중국 작가의 작품을 함께 거래하는 방식으로 중국 작품의 가격을 크게 올려놓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미술가들도 국내에만 머물지 말고 새로 떠오르는 중국 미술계로 적극 진출해 교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는데, 특히 중국 미술 평론가들은 중국과 다른 양상으로 발전해온 한국 현대미술의 창의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