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추경은 10년 전 산중 작업실로 옮긴 이후, 대자연속에서 바람이란 주제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탐구해왔으며, 2003년 겨울숲, 설중화 시리즈에서 2007년 바람꽃으로 재현되고 있다.
이번 작품들은 형식의 측면에서 이전과 사뭇 다른 점들이 발견된다. 이른바 물감과 도구의 사용에서 실험적인 측면이 강화되었고 순간적 프로세스에서 생겨나는 매체의 변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장인적 손작업이 중시되는 경향으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실험과 변화를 동반한 작업에 <바람꽃>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바람꽃> 시리즈가 추경이 오래전부터 찾고자 했던 현상과 관념의 두 영역에 대한 관계성을 보다 명확하게 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추경의 <바람꽃>은 과연 바람이 만든 꽃이다. 표현기법은 화면에 새겨진 꽃의 이미지는 물감에 작용하는 바람의 힘에 의해 우연적 효과가 두드러지면서 일종의 초현실적 환각을 만들어 낸다. 바람결에 의해 겹쳐진 물감의 층은 영겁의 시간 속에서 형성된 석화처럼 무게를 지닌 이미지처럼 보이기도 하고 마술사의 손위에서 펼쳐진 환상의 꽃다발이 되기도 한다. 또, 푸른 호수의 수면에 떨어져 파동을 일으키는 빗방울처럼 그 낯선 바람은 화폭에 서정의 리듬을 펼쳐 놓는다. 바람꽃은 자연의 외관으로서 꽃의 이미지에서 자유롭다. 그러나 시지각의 베일을 한 꺼풀 더 벗기고 보면 그 자유로움은 사실 자연의 외관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바람꽃은 자연이미지와 화폭에 그려진 허상이미지 사이를 넘나든다. 실재와 허상, 혹은 현상과 관념, 이 두개의 힘이 끌고 당기는 역학의 세계 - 이것이 추경의 추구하는 회화적 본질의 세계가 아닌가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