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호갈대습지공원

잊혀진 시심을 건드리는 갈대, V자 편대를 이루며 날아가는 기러기떼, 고라니 발자국이 생생하게 찍힌 눈밭길…. 시화호갈대습지공원에서 어렵지 않게 대할 수 있는 풍경들이다. 시화호 최상류에 위치하면서 갈대밭이 드넓게 형성돼 있어 공원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시화호갈대습지공원'으로 굳어졌다. 이 공원을 두고 안산시에서는 도로안내표지판에 '안산갈대습지공원'이라고 표기해놓기도 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여행객들이 광활한 갈대밭 감상을 목적으로 떠난다면 저 아래 남쪽 지방인 전남의 순천만이나 해남 고천암호, 이보다 조금 더 가까운 데로 간다면 충남 서천 신성리 갈대밭 등을 가야 하니 많은 수고가 뒤따른다. 그렇지만 시화호갈대습지공원은 수제비나 칼국수로 점심 끼니를 뚝딱 때우고나서 출발해도 여유로운 목적지라 하겠다. 공원을 찾아가는 길은 매우 쉽다. 서해안고속도로 매송나들목으로 나가서 직진 코스로 6㎞ 정도쯤 가면 도로 왼편에 공원이 있으니 말이다.

공원에 도착하면 맨 먼저 시화호환경생태관 3층 건물 옥상부터 올라가서 갈대밭 전경을 감상해본다. 반월천, 동화천, 삼화천이 만나는 강변마다 몸에는 누런 옷을 걸쳐 입고 때로는 머리에 흰 눈 조각을 인 채 묵묵히 겨울바람을 이겨내는 갈대의 뚝심이 찬 바람을 타고 전해진다. 갈대는 여행객들에게 '복잡한 이 세상, 차분하게 사셔도 좋습니다'라고 묵직한 메시지를 귀엣말로 던져주는 것만 같다.

2층으로 내려가서 시화호역사관, 자연생태실, 습지생태실 등에 전시된 자료들을 살펴본 다음 야외로 나가서 목재 데크를 이용한 관찰로를 걷기 시작한다. 품바타령이라도 들려줄 태세를 취한 갈대밭과 꽁꽁 얼어붙은 연못 사이로 난 관찰로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 있어 발걸음을 뗄 때마다 뽀드득 소리를 들려준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기분에 잠시 젖는다. 목재 데크 관찰로는 길이가 약 1.7㎞나 된다.

이 공원은 봄·가을 주말에는 최대 2000명 정도까지 방문하지만 한겨울에는 숫자가 급감, 몇십 명 정도에 불과하다. 연인끼리, 또는 가족끼리 타인의 목소리와 발걸음 소리에 방해받지 않고 사랑의 대화를 주고받거나 일상사의 수다를 늘어놓기에 좋다. 이런 분위기는 높은 점수를 받아 블로거들 사이에 관찰로는 은밀한 데이트 코스, 느리게 걷기 명소로 소문이 번져나가고 있다.

관찰로 산책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에 조류관찰대라는 곳으로 들어가 작은 창을 통해 겨울철새들을 찾아본다. 생태관 안내사로 근무하는 최지유씨의 말로는 시화호에 날아드는 철새는 150여종에 15만 마리나 된다고 한다. 시화호의 대표적 겨울철새로는 흰뺨검둥오리, 검은머리흰죽지, 홍머리오리, 흰비오리, 큰고니, 큰기러기 등을 꼽았다. 그러나 조류관찰대 앞은 수면이 넓지 않고 사람들의 왕래가 잦으며 특히 혹한기에는 수심이 얕아서 잘 얼어버려 철새들이 자주 보이지 않는 점이 아쉽다.

이쯤에서 어떻게 시화호에 갈대습지가 조성됐는지 궁금해진다. 시화호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완료된 때는 1994년. 시화호 수질이 악화되면서 비난이 들끓자 상류 유역으로 유입되는 오염원을 처리하기 위해 1997년부터 갈대를 심기 시작했고 2002년 약 104만㎡(31만4000평) 규모의 습지가 조성됐다. 이는 국내 최초의 대규모 인공습지이다. 바닷물이 드나들던 갯벌은 갈대습지로 모습을 바꾸고 드디어 2005년 12월 시화호갈대습지공원이라는 이름을 내걸어 여행객들의 나들이 코스로도 사랑받고 있다. 비록 인공적으로 조성되긴 했지만 갈대습지의 수질 정화 효과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생태학습체험장이기도 하다.

▲ 경기도미술관에 들러 현대미술품을 감상하며 여행의 품격을 높일 수 있다.

참으로 아쉬운 일은 매주 월요일에만 휴장하는 이 공원이 조류인플루엔자 소식이 터지면서 철새들의 서식지인 탓에 잠잠해질 때까지 문을 닫는다는 점이다. 올해의 경우도 1월 21일까지 임시 휴장 기간으로 정해져서 여행객들은 그 이후에나 나들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시화호갈대습지공원과 함께 코스로 엮어서 가볼 만한 안산시의 명소로는 경기도미술관, 성호기념관 및 식물원, 시화방조제, 대부도, 구봉도 등이 있다.

2006년 개관한 경기도미술관은 현대미술품을 많이 전시하는 곳으로 자리를 굳혔다. 둥근 과일의 한쪽을 살짝 깎아내서 세로로 길쭉하게 세운 듯한 형태의 철골·강화유리 구조물이 예사롭지 않다. 입구에는 '한눈에 즐기는 미술사 시간여행'을 대형 도표로 그려놓아 공부하는 시간을 갖게 해준다. 실내로 들어가면 강익중 작 '5만의 창, 미래의 벽'이라는 초대형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에서부터 최북단 대성동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어린이 5만명이 그린 그림 5만점을 모아 대형 벽화로 만들었다. 가로 길이가 72m, 세로 길이가 10m에 달한다. 현재 이 미술관에서는 '1970∼1980년대 한국의 역사적 개념미술, 팔방미인'이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으며 3월 20일까지 지속된다.

성호기념관은 조선의 대표적 실학자였던 성호 이익 선생의 발자취와 업적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성호 선생은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평생 안산에 머물면서 실학사상을 펼쳐나갔다. '학문이 아름다운 문장이나 시문에만 매달리지 말고 백성들이 살아가는데 실제적으로 유용하고 실효성 있어야 한다'는 것이 성호 선생의 실학사상이었다. 성호의 저술은 훗날 '성호선생문집', '성호선생전서' 등으로 정리되었다. '성호사설'이 가장 널리 알려진 저서이다.

>> 여행정보

시화호갈대습지공원 031-400-1440, 경기도미술관 031-481-7000, 성호기념관 031-481-25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