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세계 미술계의 소식이 뉴욕으로 모여들지만 20세기 초반 미술의 중심은 파리였다. 1920년대 미국의 젊은 미술학도들은 유럽 미술계의 최신 동향에 어두웠다. 이들은 뉴욕의 독립 미술학교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로버트 헨리의 강의를 듣고서야 마네와 드가, 고야 등의 이름을 알게 된다.

프랑스 19세기 화가들을 미국에 최초로 소개했던 헨리는 20세기 초 도시 풍속화가들로 구성된 ‘애시캔 화파’의 지도자이자 후배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미술 교사다. 훗날 그의 제자들은 미국 미술계의 중추로 성장했다.

하지만 헨리가 후학을 아무리 많이 길러냈다한들 화단의 관행을 답습하거나 재생산하는 데 그쳤다면 ‘20세기 미국 미술의 아버지’라는 영예로운 평가는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당시 미술계를 쥐락펴락하던 보수주의자들을 공격했고, 젊고 독립적인 화가들이 자유롭고 공평한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개혁가였다.

책은 헨리가 미술학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이다. 예술의 가치 등 저자의 예술관을 비롯해 1891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28년까지 미술학교 학생들에게 했던 강의와 편지 등을 정리했다. 그는 진정한 예술가라면 자신만의 ‘눈’과 기법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한다. “노대가들이 해놓은 것을 숙지하고 그들이 어떻게 그림의 구도를 짰는지 파악”해야 하지만 “그들이 확립한 그림의 규칙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진정한 예술의 즐거움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그것을 표현하는 기법을 발명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미술 서적이지만 명화의 도판을 수록하고 해설한 책은 아니다. 예술관이 형성되는 시기의 화가 지망생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방향을 잡아주는 예술 입문서에 가깝다. 이종인 옮김. 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