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기자가 중ㆍ고등학생이던 시절에는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명지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필독서 중 하나였다. 심지어 책에 나오는 여정을 따라가는 답사 여행까지 유행했다.

당시 책에서 가장 유명했던 구절 중 하나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 기자도 답사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는데, 여행 중 가장 가슴에 와닿는 말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였다. 책을 읽기 전에도 가봤던 경주였지만 책을 읽고 난 후에 가본 경주는 확실히 달랐다.

유 교수가 새 책 `한국미술사 강의`(눌와 펴냄)를 펴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새록새록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유 교수 본인도 마찬가지였던지 한 인터뷰에서 "내 책이 답사 가이드북으로 팔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단다. 그래서 이번주에는 곧 방학을 맞는 학생들이 책을 들고 `답사`를 떠나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이 책을 소개한다.

총 세 권(혹은 네 권)으로 계획된 `한국미술사 강의`는 아직 1권까지만 출간됐다. 1권에서는 선사시대, 삼국시대, 그리고 발해의 미술사를 다룬다. 그 이후 시대의 미술사는 다음에 나올 책들에서 이야기할 계획이다.

저자는 미술사가 보통 건축, 조각, 회화, 공예 순으로 기술되던 틀에서 벗어나 선사시대에서 발해까지를 열두 주제로 묶어 서술했다. 내용의 전개 방식을 다르게 선택한 이유는 책 제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처음 출판사에서는 `한국미술사 개론`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펴내고자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저자가 `강의`라는 말을 고집했단다. 내용이 지나치게 딱딱해지는 것을 막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서문에서 저자는 `밑줄 치면서 공부하는 한국미술사`가 아니라 `소파에 기대어 편안히 독서할 수 있는 한국미술사`를 쓰고자 했다고 밝힌다.

실제로 읽어보면 저자가 직접 강의하듯이 자연스러운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책이 구성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이 기존 미술사 책들과 또 하나 다른 점은 고고학 분야나 고인류학, 산성이나 비석의 금석문 등의 내용을 포함했다는 것이다.

이 책이 `답사의 지침`이 되기를 바란 저자의 `의도`가 여기서도 엿보인다. 특히 미술 작품 자체뿐 아니라 그 작품의 제작 배경이나 유물에 얽힌 일화까지 다루고 있어 흥미롭다. 책을 보고 있자면 이것이 미술사 책이었는지 국사 책이었는지 잠시 헷갈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거기에서 다시 이 책이 한국 미술의 `이야기(Story)`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책에는 꽤 많은 사진이 수록돼 있다. 언급된 유물은 대부분 사진으로 수록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진을 보는 데서 만족하지 말고, 실제 그 유물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의 의미를 체험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정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