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친일 논란, 홍난파 다시 보기

서울 종로구 홍파동 2-16에는 양옥집이 있다. 담쟁이가 외벽을 감싸고 있는 박공지붕 양옥은 근대문화유산 90호. 독일 선교사가 지어 살던 집으로 작곡가이자 연주가인 홍난파(洪蘭坡·1898~1941)가 1935년부터 1941년까지 6년을 살았다. 집 뒤편 산비탈은 서울시교육청 끝자락으로 서울 성곽이 시작되는 곳이다.

   지난 11월 11일 밤, 이 집에서 ‘홍난파 탄생 112주년 기념음악회’가 열렸다. 음악 관련 인사 100여명은 빗길을 헤치고 홍난파 가옥에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비좁은 거실에서 무릎과 무릎을 바짝 붙인 채 음악회에 빠져들었다.

   먼저 어린이 노래그룹 ‘작은 평화’가 홍난파 작곡의 동요 ‘고향의 봄’ ‘햇볕은 쨍쨍’ ‘개구리’ ‘퐁당퐁당’을 불렀다. 이어 성악가들이 출연해 ‘봉선화’ ‘사공의 노래’ ‘옛 동산에 올라’ ‘장안사’ ‘그리움’ 등을 불렀다. 마지막 순서는 출연진과 참석자 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향의 봄’을 합창했다. 홍난파가 살던 집에서 그가 남긴 불후(不朽)의 곡을 노래하는 순간 참석자들은 감격한 표정이 역력했다. 기자는 이들의 얼굴을 살펴보면서 ‘홍난파 음악이 없는 한국인의 정서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국인이 최근 홍난파를 떠올린 것은 다음과 같은 신문기사 때문이었다.

   ‘작곡가 홍난파의 후손이 홍난파를 친일인사 명단에서 제외해 달라며 낸 소송을 취하했다. 이에 따라 법원 결정으로 명단에서 일시 제외됐던 홍난파가 친일인사 명단에 다시 등재될 것으로 보인다. 9일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홍난파를 친일 행위자로 규정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후손이 낸 소송에서 선고를 하루 앞둔 지난 4일 원고가 소 취하 의사를 밝혔다. 피고도 동의해 재판이 종결됐다….’

   후손은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둘째딸 정임(73)씨를 말한다.

   홍난파의 이름 앞에는 항상 ‘최초의~’라는 형용어구가 붙는다. 한국 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 최초의 기악곡을 작곡한 작곡가, 최초의 음악평론가, 최초의 실내악단 설립자, 최초의 음악잡지 발행인, 최초의 방송관현악단 지휘자 등….

   ‘친일인사 홍난파’는 홍난파를 부르며 성장한 모든 한국인을 혼란케 한다. 앞으로 홍난파 노래를 부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인가, 또 ‘난파 동요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동시에 우리는 홍난파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나, 라고 자문하게 만든다.


   친일 논란 1937~1941년

   먼저 ‘친일시비’의 빌미가 되는 1937년의 상황으로 돌아가본다. 이광수, 최남선, 현제명 등 조선의 내로라하는 명망가들은 1937년 이후의 행적으로 인해 친일시비에 휘말려왔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면서 일제는 조선을 병참기지화했다. 일제는 가능한 인적·물적 자원을 총동원했다.

   1937년 난파는 수양동우회사건에 연루되어 서울 종로경찰서에 검거되었다. 수양동우회는 흥사단의 국내 조직. 흥사단에 참여해 노래를 작곡했다는 죄목이었다. 난파는 종로경찰서에서 온몸에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난파가 종로경찰서 유치장에 갇혀있을 때, 부인 이대형은 임신 8개월이었다. 난파는 차디찬 유치장에서 둘째딸 정임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난파는 종로경찰서에 수감되어 있으면서 자신이 맡고 있던 직책에서 사임하게 된다. 빅터레코드사 경성지점 고문 겸 음악주임직과 경성보육학교 음악과 주임교수가 대표적이었다.

   난파가 72일 만에 석방된 것은 늑막염이 재발했기 때문이다. 난파는 석방된 뒤에도 일경의 감시에 시달리다가 11월 4일 사상전향서를 쓰게 된다. 이때 사상전향서를 쓴 저명인사 명단에는 소설가 전영택, 성악가 현제명 등이 포함되었다. 조선총독부 주도로 결성된 조선문예회에 홍난파의 이름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였다. 같은해 12월 난파는 경성방송관현악단 지휘자로 취임했다. 1938년에는 대동민우회(大同民友會)에 다시 홍난파의 이름이 들어갔다.

   1939년은 잊을 수 없는 해였다. 1939년 6월 난파는 한국 최초로 관현악곡 2곡을 발표했다. ‘관현악 조곡’과 ‘나그네의 마음’이다. 난파가 작곡가로 활동한 기간은 20여년. 이 기간 동안 난파는 동요, 가곡, 영화음악, 대중가요, 관현악곡 등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썼다. 이 점에서 그는 모차르트를 닮았다. 7월 홍난파가 지휘하는 경성방송관현악단은 모차르트 교향곡 41번(일명 주피터)을 연주했으며 음악회 실황이 제2라디오를 통해 전국에 중계되었다.

   1940년부터 난파는 늑막염이 악화되어 사실상 음악활동을 중지한 채 병원을 전전했다. 그런 가운데 1940년 7월 7일 매일신보에 ‘지나사변과 음악’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난파는 1938년 2월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재즈와 관련 “국법이 이것을 금지하거나 말거나 결국 아무 효과가 없을 만큼 시대인은 자기네 총아로 위안물로 또 신경자극제로 이 반역아를 환영하고 이 이단자와 영합하는 것”이라고 썼다. 실제로 2차대전 중 일제는 미국이 참전하자 재즈를 적성국의 음악으로 규정하며 금지시켰다. 한반도에서 재즈의 선율은 일시에 사라져버렸다. 1941년에는 조선음악협회에 홍난파가 참여한 것으로 발표됐다. 난파는 가족에게 “내가 죽거든 무덤을 만들지 말고 연미복을 입혀 화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난파는 경성요양소에서 나와 자택으로 돌아와 1941년 8월 30일 눈을 감았다. 이것이 43년 생애에서 홍난파의 최후 4년이다.


   음악에 눈뜨다

▲ 홍난파·이대형 부부가 딸 정임을 안고 홍파동 집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시기는 1938년 초로 추정.
‘봉선화’ ‘고향의 봄’ 작곡가 홍난파의 39년 인생이 궁금해진다. 풍수지리는 확실히 작용하는 것 같다. 어떻게 한 고장에서 한국 서양음악의 선구자와 대중가요 가왕(歌王)이 함께 태어날 수 있을까. 홍난파는 1898년 4월 10일 경기도 화성에 태를 묻었다. 정확히 52년 뒤에 조용필이 역시 경기도 화성에서 첫울음을 터뜨렸다.

   홍난파는 홍준·전주이씨 사이의 4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친 홍준은 선교사 언더우드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역관(譯官). 홍준은 일찍부터 서양문물에 눈을 떴다. 부모가 지어준 홍난파의 이름은 영후(永厚). 장남 석후(錫厚)와는 17년 차가 났다.

   영후의 인생에서 큰형 석후는 중요한 순간마다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석후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배재학당에 들어가 서양학문을 공부했다. 당시 석후와 함께 공부한 동기생 중에는 훗날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 광복 후 건국대통령이 되는 이승만이 있었다.

   배제학당 출신은 대부분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석후는 부모의 뜻을 따라 의사의 길을 갔다. 그는 알렌이 운영하던 제중원(세브란스 전신) 1기생으로 들어가 서양의학을 공부했다. 졸업생 7명은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가 됐다.

   영후는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 13세 때 서울 정동으로 이사를 왔다. 당시 정동은 외교가(街)로 미국, 러시아, 영국, 독일 등의 공관이 몰려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새문안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아버지는 아들이 새문안교회를 다니며 교회음악을 통해 타고난 음악적 재능에 눈을 떠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영후는 1910년 서울 YMCA 청년학과 중학과에 입학해 1914년 졸업한다. 영후는 1912년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고 졸랐다. 차남도 의사를 시킬 생각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이 ‘양깽깽이’를 잡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때 의사인 큰형 석후가 동생 영후 편을 들었다. 영후는 서울에서 바이올린과 바이올린 교본을 7원50전을 주고 샀다. 경성에서 세 번째로 바이올린을 갖게 되었다.

   YMCA를 졸업한 영후는 조선정악전습소 성악과에 정식으로 입학해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김인식의 지도를 받으며 음악공부를 하던 17세에 그는 당시의 조혼 풍습에 따라 김상운과 혼인했다. 김상운의 부친은 알아주는 거상(巨商)의 한 명인 김석태였다. 조선정악전습소 시절 영후는 틈틈이 잡지에 음악 관련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1918년 그는 딸 숙임을 얻었다. 그러나 김상운은 첫아이를 낳고 산후 후유증으로 병을 얻고 만다(김상운은 결국 1926년 병사한다).

   영후는 억지로 세브란스의전에 입학했다가 1년 만에 중퇴하고 만다. 이어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 도쿄음악학교 예과에 입학한다. 도쿄음악학교는 우에노(上野)공원 안에 있어 우에노음악학교로 불렸다. 영후의 도쿄 유학 결행에 결정적 도움을 준 이는 큰형 석후였다. 장인 김석태 역시 음악가 사위를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당시 도쿄음악학교에 다니던 한국인으로는 최초의 피아니스트 김영환과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이 있었다.

   영후는 1919년 3월 예과를 마치자마자 본과에 진학을 희망했으나 좌절되고 만다. 조국에서 3·1만세독립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도쿄 현지에서 만세운동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소설가& 음악평론가

▲ 2010년 11월의 홍파동 홍난파 가옥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일본 유학은 조국의 정치상황으로 인해 예상보다 짧게 끝났지만 눈여겨봐야 할 게 있다. 당시 도쿄에는 한국 유학생이 1000명 안팎 있었다. 난파는 1919년 2월 도쿄에서 예술잡지 ‘삼광(三光)’을 창간했다. 예술잡지 ‘삼광’ 창간은 지금까지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로만 알려졌던 음악천재 난파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해준다.

   난파가 발행인 겸 편집인이 되었던 ‘삼광’. 이 예술잡지는 음악·미술·문학 3개 분야를 다룬다고 표방했지만 실상은 음악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창간호는 1919년 2월 10일에 발행되었다. 2월 1일에 발행된 한국 최초의 문예지 ‘창조’보다 불과 9일 뒤에 나온 잡지가 ‘삼광’이었다. 여기서 잠깐 창간사의 일부를 보자.

   ‘우리 조선은 깨는 때 올시다.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는 때 올시다. 할 때 올시다. 남과 같이 남보다 더 낫게 할 것이 올시다. 암흑에서 광명으로 부자유에서 자유로 나가야 합니다. 퇴폐한 구습과 고루한 사상을 타파하고, 새 정신 새 사상 훌륭한 욕망 위대한 야심을 집어넣어야 할 것이외다. 그리하여 우리의 실력을 건전하고 충실하게 양성하여야 합니다.…비노니 우리 2천만 형제여, 같이 힘쓰십시다.’

   난파는 창간사 외에도 본명과 다양한 필명을 동원해 글을 썼다. 아호 난파가 처음 등장하는 것도 흥미롭다. 글 제목만 훑어보아도 난파의 관심 범위를 짐작할 수 있다. 음악이란 하오(洪永厚), 음악상의 신지식(蘭坡), 인문발달의 3대 시기(YH생), 부슬비 오는 밤(쏠파生), 서울 계신 K형께(ㄷ,ㄹ,ㅁ), 금패의 행방(都禮美), 사랑하는 벗에게(도스토예프스키 작, 도뤠미生 역)….

   ‘삼광’ 2호는 같은해 12월 28일에, 3호는 1920년 4월 15일에 각각 발행했다. 예나 지금이나 잡지를 발행한다는 것은 많은 돈이 든다. 난파는 큰형과 장인이 보내주는 돈으로 악기를 사고 잡지를 발행하는 데 다 써버렸다. 그러니 늘 돈에 쪼들렸고 아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기까지 했다. 도쿄 유학생 홍난파에게 돈을 보내준 사람 중에는 당대의 정치가 윤치호가 있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난파는 잠시 신문사 객원기자로 활동했다. 또한 종로 YMCA에서 열리는 각종 음악회에 바이올린 연주자로 참여했다. 난파는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하면서도 한계를 절감했다. 음악선진국에 가서 음악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난파는 그해 미국 유학을 준비하며 비자 신청을 했지만 거절되었다. 1921년 다시 독일 유학을 준비하며 비자를 신청했으나 이 역시 무산되었다.

   이후 난파는 천재 예술가로 음악, 문학, 평론, 연극 등 다양한 분야에서 최초의 시도를 하게 된다. 음악가로서 그는 소설을 썼다. 그는 1919년 9월부터 매일신보에 소설 ‘허영’을 연재했다. 필자 이름은 ‘蘭坡洪永厚君作’. ‘허영’은 60회까지 연재되었다.

   난파의 최초의 소설집 ‘처녀혼’은 1921년 출판되었다. 난파는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보이며 계속 작품을 썼다. 난파가 쓴 다른 소설로는 ‘향일초’ ‘폭풍우 지난 뒤’ ‘운희의 사’ 등이 있다.

   난파 연구가들은 첫 소설집 ‘처녀혼’에 주목한다. 난파가 소설집의 첫 장에 자신의 사진과 함께 ‘애수’라는 이름의 악보를 실었기 때문이다. ‘애수’는 1920년 4월에 작곡한 작품으로 악보를 공개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애수’는 훗날 김형준이 이 곡에 ‘봉선화’라는 가사를 붙여 예술가곡의 효시가 된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로 시작되는 불멸의 명곡 ‘봉선화’다.


   연극, 그리고 재즈

홍난파가 연극 활동을 하면서 윤심덕과 같은 무대에 섰다는 사실도 무척 흥미롭다. 난파는 1921년 자신의 소설 ‘최후의 악수’를 각색해 연극무대에 올렸다. 연극을 올린 단체는 도쿄 유학생을 중심으로 구성된 극예술협회. 연극 ‘최후의 악수’는 부산을 시작으로 대도시를 순회공연했고 서울 YMCA에서 마지막 공연을 했다. 순회공연의 경비 대부분은 와세다대 유학생 김우진이 냈다. 순회극단 공연 중 막간을 이용해 난파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윤심덕이 소프라노 독창을 했다. 이후 윤심덕은 1926년 연인 김우진과 현해탄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윤심덕이 죽은 후 그가 취입한 음반 ‘사의 찬미’가 나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문학과 음악, 두 분야를 무섭게 질주하던 난파에게 제동을 건 이는 수주 변영로였다. 1925년 구정 때였다. 문인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취기가 오른 변영로가 난파 면전에서 쏘아붙였다. “너는 음악이나 하면 했지. 주제 넘게 소설은 다 무엇이야? 그래 개천지 통만고(開天地通萬古)해서 두 가지 예술에 대성한 천재가 누구란 말이냐?”

   난파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했다. 조금 머뭇거리다 시인이자 음악가인 바그너의 이름을 댔다. 변영로는 기다렸다는 듯 쏟아부었다.

   “그래, 네가 그런 불세출의 대천재를 말이지?”

   난파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난파는 출판하려던 소설 원고 ‘분화구상에 서서’를 태워버렸다. 이후 난파는 소설 집필을 그만두고 음악평론만 하게 된다. 난파는 음악공부에 전념할 필요성을 느꼈다. 난파는 1926년 다시 일본 도쿄고등음악학교에 편입하고 이듬해 도쿄신교향악단의 제1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었다.

   예술잡지 ‘삼광’은 실패했지만 예술전문지에 대한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난파는 1925년 4월, 음악전문지 ‘음악계’를 창간했다. 발행처는 난파가 창립한 연악회. 서대문 150번지에 주소를 두고 있었다. ‘음악계’는 권당 30전에 판매했다. 유럽과 미국의 음악계 흐름과 음악가를 주로 다룬 ‘음악계’는 틈틈이 최신 서양음악 악보를 제공해 연주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1926년 2월 제4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이유는 금전적 손실을 난파가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 재즈가 처음 상륙한 것은 언제일까? 1925년 상하이에 축구대표단을 이끌고 원정경기를 갔던 단장 백명곤이 재즈악보와 악기를 사가지고 조선에 들어온 게 처음이었다. 백명곤은 홍난파를 끌어들여 ‘코리안 재즈 밴드’를 결성했다. 밴드 멤버는 홍난파(피아노)·홍재유(바이올린)·백명곤(제1색소폰)·이철(제2색소폰)·한욱동(트럼펫)·이상준(드럼)·박건원(트럼본)·이인선(보컬)이었다. ‘코리안 재즈 밴드’는 1926년 종로 YMCA 강당에서 한국 최초로 재즈공연을 가졌다. 이 밴드의 중심은 단연 홍난파였다. 홍재유는 큰형 석후의 장남. 석후는 5남1녀를 두었는데 아들 네 명이 모두 음악을 했다.


   미국 유학과 흥사단

   난파는 1931년 7월 25일 경성역에서 부산행 기차를 타고 꿈에 그리던 미국 유학의 장도에 올랐다. 입버릇처럼 말하던 “좀 더 배워 가지고 와야겠다. 어쨌든 좀 더 배워야겠소. 더 배우지 않고는 더 일할 수가 없소”라는 말을 실현할 기회를 잡았다. 난파는 선박 편으로 요코하마에 도착해 7월 30일 미국 하와이로 향하는 신요마루호에 몸을 실었다. 하와이에 도착한 난파는 동포의 도움으로 형 친구인 이승만 박사를 만나기도 했다.

   2주간의 하와이 체류를 끝내고 난파는 아사마사루호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난파는 기차로 로스앤젤레스, 신시내티를 거쳐 마침내 시카고에 도착했다. 그는 셔우드(Sherwood)음악학교 연구과에 입학했다. 신장 166㎝에 사각턱인 조선의 음악천재는 오매불망 원하던 셔우드음악학교에서 작곡, 관현악 편곡 등 고급과정을 수강했다.

   난파가 셔우드음악학교에서 공부한 기간은 1년6개월 정도. 바이올린과 관현악은 마리너스 폴센 교수에게 사사했다. 당시 난파는 학비가 부족해 ‘밸런스 페이(Balance Pay)’를 선택했다. ‘밸런스 페이’란 학비의 일부를 먼저 내고 돈이 생길 때마다 나머지 학비를 1년 안에 내는 방식을 말한다.

   1년6개월의 미국 유학 생활에서 주목할 부분은 난파의 흥사단 활동이다. 난파는 12월 8일 미주 흥사단에 가입하고 단번 266번을 부여받는다. 셔우드음악학교 시절 난파가 기록한 음악사 노트에는 우리말, 영어, 일어가 혼용되어 있었다.

   이 부분은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난파는 구한말에 태어나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고 소학교를 다니던 중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강제병합되었다. 우리말을 쓰는 법을 다 배운 뒤에 일제 식민지가 되었고 일본어를 모국어로 배우게 된 사람이다. 이와 반대로 1910년 이후 태어나 일본 유학을 한 사람들의 노트를 보면 일본어와 영어로만 필기가 되어 있다.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배우고 영어를 제2외국어로 배운 결과이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난파는 놀라운 창작열을 보여주었다. 불과 3개월 사이에 새로운 동요 50곡을 발표하게 된다. 이로써 ‘조선동요백곡집’ 하편을 완성하게 되었다. ‘햇볕은 쨍쨍’을 비롯해 ‘고드름’ 등이 이 시기에 탄생했다. 1933년 9월 15일 정동 모리스홀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악단 난파트리오 첫공연이 막을 올렸다. 제1바이올린 홍난파, 제2바이올린 홍성유, 제3바이올린 이영세. 홍성유는 큰형 석후의 셋째 아들로 ‘봉선화’의 작사가 김형준의 사위이기도 했다.

   1934년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함께 일어났다. 먼저 나쁜 일은 늑막염이 발병했다는 사실. 20세기 초반 늑막염은 결핵 다음으로 사망률이 높았다. 좋은 일은 난파가 홀아비 생활 8년을 청산하고 재혼했다는 사실이다. 재혼 상대는 경성보육학교 제자였던 이대형.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음악계에서는 유명한 이야기다.


   제자와의사랑

▲ 홍난파 가옥에서 난파의 외손인 홍익표씨와 홍난표씨.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난파는 1933년 경성보육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당시 이대형은 졸업반이었다.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이대형은 당시 아들도 서울 유학이 힘들던 시절에 개화된 오빠 덕택에 유학 기회를 잡았다.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보육학교에 진학했다.

   이대형은 함경도 보육학교 교사로 부임하기 직전, 홍난파의 집에 초대받는다. 난파는 제자에게 손수 차를 끓여주며 좋은 사람에게 중매를 서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이대형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깜짝 놀랐다. 난파가 이대형에게 중매를 서고 싶다는 남자의 사진을 건넸다. 그 사진 속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홍난파 자신이었다. 이대형은 얼굴이 빨개져 집으로 달려갔고 다음날 함경도 부임지로 떠났다. 그러나 1년 뒤 이대형은 스승인 난파의 청혼을 받아들이게 된다.

   1934년 12월 홍난파·이대형은 서울 아현동 감리교신학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는 새문안교회 담임목사인 차재명 목사. 난파는 홍파동 가옥에서 부인의 내조를 받으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일요일마다 난파 부부는 충무로 2가에 있던 명치제과점에 가서 점심을 먹고 남산공원으로 산책을 하곤 했다. 난파 부부는 남산공원에서 홍파동 집을 바라보는 것을 즐겼다. 난파는 당시 빅터레코드사 고문직에 있었는데 아내에게 월급쟁이의 즐거움을 이렇게 말하곤 했다.

   “부자는 무슨 재미로 사느냐? 우리는 월급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참 재미가 난다. 월급날이 되기 한 5~6일 전에 돈이 떨어져서 쩔쩔매다가 월급을 받으면 꾼 돈도 갚고 그 얼마나 재미가 나느냐?”

   난파가 대중가요를 작곡했다?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난파는 동요를 117곡이나 작곡한 사람이다. 작사가로 난파와 함께 가장 많은 작업을 한 사람은 윤석중이다. 난파 본인이 작사한 곡도 여러 곡 된다. 난파는 1930년대 중반까지 여러 글에서 대중가요를 비판했다. 대중가요는 어린이들에게 해(害)만 있지 이익은 없다고 주장하고 했다. 하지만 1930년대 후반에 이르러 백년설이 부른 ‘순정의 꽃장사’를 비롯해 여러 곡을 썼다. 음악평론가 서우석은 난파가 대중가요를 작곡한 것은 생활고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천재예술가가 남긴 것

최근 들어 홍난파 가옥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홍난파 가옥은 미니 박물관이다. 현재 홍난파 가옥은 서울시 소유이며 관리는 난파의 외손들이 하고 있다. 앞서 말한대로 난파는 딸만 둘을 두었다. 첫째딸 숙임(1918~ 1984)은 사망했고 둘째딸 정임(1937년생)은 미국에 살고 있다.

   숙임은 이화여대 음대 피아노학과를 졸업했는데 동성동본인 홍문길과 결혼했다. 사위 홍문길은 장인의 유언을 받들어 난파의 분골(粉骨)을 한강에 눈물로 뿌린 사람이다. 두 사람은 슬하에 3녀1남을 두었는데, 이들이 돌아가며 홍난파 가옥을 지키고 있다. 4남매 중 음악을 한 사람은 둘째딸 홍난표씨. 운이 좋으면 연세대 음대를 졸업한 외손녀 난표씨가 연주하는 ‘봉선화’를 들을 수 있다. 외손자 홍익표씨는 안양과학대 부총장으로 재직 중인데, 외조부를 많이 닮았다.

   난파의 음악평론을 읽어본 한국인은 음악관계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홍난파 가옥 지하실에는 음악감상실이 있다. 이곳에 난파가 음악평론집 ‘음악만필’(1938)에 쓴 한 대목이 걸려 있다. 난파가 쓴 곡을 허밍하며 읽어내려 갔다.

   “연주가와 커피의 맛은 남의 구설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것이다. 자족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진보는 없다. 대성한 예술가일수록 겸양의 덕을 기르기에 힘쓴다. 기뻐서 웃는 자를 울리게 할 명곡이 없고, 슬퍼서 우는 자에게 웃음을 줄 명연주가가 없다. 재즈라고 덮어놓고 염가의 평을 내릴 것은 아니다. 고전에 도취된 이에게, 재즈의 한 곡은 가끔 가끔 훌륭한 청량제가 될 때도 있을 것이다. … 음악이란 보름달(望月)과 같다. 이것을 보고 슬퍼하는 자도 있지마는 때로는 기뻐하는 자도 있는 것이다. 현대인은 모든 생활 형식에 있어서 음악을 이용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음악 자체를 놓고 생각한다면 언제나 사람이 음악의 이용물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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